Responsive Advertisement

[칼럼] 체감과 통계 사이의 줄다리기, 스타크래프트 종족 밸런스의 현주소

안녕하세요, ASL을 즐기는 팬분들! 

최근 스타크래프트 커뮤니티를 가장 뜨겁게 달구는 화두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끝없이 이어지는 3종족 밸런스 논쟁입니다. 저그의 6연속 우승이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이 쓰이면서 종족 간의 유불리를 두고 수많은 의견이 쏟아지고 있죠. 오늘은 스타크래프트의 종족 간 물고 물리는 밸런스의 본질을 제 직장 생활의 시선과 플레이 경험을 녹여  분석해 보려고 합니다.

스타크래프트 종족 밸런스의 현주소
스타크래프트 종족 밸런스의 현주소

저그의 장기 집권: 시스템의 우위인가, 아웃라이어의 기적인가

현재 ASL의 표면적인 지표만 보면 완연한 저그의 시대입니다. 무려 6시즌 연속 우승컵을 저그가 들어 올렸으니, 지나가는 사람이 보면 한 종족이 시장을 완전히 독점한 불공정 생태계처럼 보일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데이터 분석을 주로 다루는 제 관점에서 보면, 이것을 단순히 종족 자체의 밸런스 붕괴로만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새로운 선수 유입이 끊긴 지 오래된 현재의 판에서는, 우승권에 도달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S급 선수가 열 명 남짓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즉, 모집단이 극도로 작기 때문에 이 연속 우승이라는 결과는 통계적으로 큰 의미를 갖기 어렵고, 단지 김민철이나 박상현 같은 극소수의 아웃라이어(특출난 천재)들이 엄청난 퍼포먼스를 낸 결과일 뿐이라는 해석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와요. 실제로 24강이나 16강 등 상위 라운드의 인원 비율을 들여다보면 테란이 훨씬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현업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특정 부서가 매년 사내 실적 우수상을 싹쓸이할 때, 그것이 부서 자체의 시스템이 사기적으로 좋아서인지, 아니면 그 부서에 속한 한두 명의 슈퍼 에이스가 하드캐리한 것인지는 명확히 구분해야 하죠. 지금 저그의 우승 독식은 시스템의 문제라기보다는 에이스 개인의 역량이 만들어낸 결과에 가깝다고 봅니다.

고점이 닫혀버린 프로토스의 구조적 슬픔

반면 제가 예나 지금이나 애정을 갖고 지켜봐 온 프로토스의 상황은 객관적인 수치로 보나 유저들의 체감으로 보나 매우 암울합니다. 저는 항상 프로토스를 두고 저점은 제일 높지만 고점은 제일 낮은 종족이라고 평가해왔는데요.

실제로 역대 스타판의 통계를 보면 프로토스의 우승 횟수는 항상 가장 적은 축에 속했습니다. 심지어 상성상 유리하다고 평가받는 대 테란전조차 결승전 전적은 동률에 가깝죠. 특히 다전제 저프전 결승의 역사는 더욱 가혹한데, 과거 프로씬 시절부터 지금까지 결승에서 저프전이 무려 13번이나 열렸지만 토스의 승리는 2007년 김택용 선수가 유일합니다. 나머지 결승전에서는 모두 저그가 압승을 거두었어요. 무난하게 후반으로 흘러가면 하이브 저그와 업그레이드 테란을 상대로 프로토스의 전면전 밸류가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약세의 근본적인 원인은 구조적 비효율성에 있습니다. 게임 초반 가장 중요한 정찰을 위해서 100이라는 비싼 미네랄을 들여 지상 유닛을 소모해야 하는 상황부터가 몹시 불합리하게 다가옵니다. 테란의 벌처는 미네랄 75라는 미친 가성비에 빠른 속도까지 자랑하는데, 토스는 시작부터 100짜리 비싼 지상 유닛인 질럿으로 느릿느릿 목숨 걸고 서치를 다녀야 합니다. 게다가 드라군과 리버의 그 답답하고 멍청한 인공지능 버그 때문에 유닛들이 길을 잃고 버벅거리다가 허무하게 폭사할 때면, 모니터를 부수고 싶은 깊은 빡침이 밀려온 적이 한두번이 아니에요. 커세어의 백샷이 뮤탈리스크처럼 부드럽게 재현만 됐어도 이 지경까지 무너지진 않았을 텐데 말이죠.

위기 상황을 타개할 마법 유닛의 활용도 딜레마입니다. 저그전 한정 무적의 효율을 낼 것 같은 다크 아칸도, 실상 뮤탈리스크 체제를 상대로는 다크 템플러 두 마리를 합쳐 마나 100을 모으고 마엘스톰 업그레이드까지 해야 하는 비효율의 극치입니다. 차라리 정찰과 오버로드 사냥, 시야 차단을 동시에 해낼 수 있는 다재다능한 커세어를 운영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이 김택용 등 전직 프로게이머들의 냉정한 평가죠.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개발한 하이엔드 솔루션이 실전에서는 범용 솔루션보다 효율이 떨어지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가위바위보와 주도권: 3종족 상성의 본질

스타크래프트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세 종족의 밸런스는 흔히 가위바위보로 쉽게 설명되곤 합니다. 하지만 그 본질은 초반 주도권, 즉 시야와 선공권을 누가 쥐고 흔드느냐에 있습니다.

이론상으로는 테프전은 프로토스가, 저테전은 테란이, 저프전은 저그가 초반 주도권을 쥐고 상성상 우위를 점해야 맞습니다. 예를 들어 테란이 저그에게 강한 이유는 마린과 파이어뱃 등으로 비싼 가스를 먹는 저그 유닛을 소모시킬 수 있는 기본 유닛의 차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저들의 실력이 극한에 달한 현재, 이 주도권의 톱니바퀴는 수시로 어긋나고 있습니다. 테란의 굳건한 수비력이 프로토스의 선공권을 무력화시키기도 하고, 저그의 예측 불가능한 난전이 테란의 묵직한 한 방을 무용지물로 만들기도 하죠.

이처럼 경직된 구조 탓에 프로토스를 구제하기 위해 유저들 사이에서는 다양한 밸런스 패치 안이 논의되기도 합니다. 드라군과 리버의 고질적인 인공지능 버그를 수정해 주거나, 철저히 외면받는 유닛인 스카웃에게 기본 속업, 시야업 혹은 기본 아머 2를 부여하자는 현실적인 타개책들이죠. 하지만 스카웃에 속업을 기본으로 주면 컨이 쉬워져 저그전에서 뮤탈과 스컬지가 사장되는 또 다른 밸런스 붕괴가 일어날 수 있고, 초반 유닛인 질럿 가격을 가성비 좋은 벌처처럼 낮추는 것도 너무 큰 파급력을 가져오기에 밸런스 조정은 무척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타이밍을 위하여

맵으로 종족별 밸런스를 맞추고 있는 현실에서, 완벽한 황금 밸런스는 영원한 난제일지도 몰라요. 우승권 선수들의 눈부신 기량이 시스템의 한계를 덮어버리기도 하고, 주도권을 쥔 한 번의 찌르기가 승패를 가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끝없이 새로운 빌드를 연구하고, 결국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내는 과정 자체가 스타크래프트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요?

우리도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내가 가진 자원이나 인프라가 조금 불리해 보이고, 경쟁 부서의 완벽한 매뉴얼이 부러워 보일 때가 있습니다. 프로토스처럼 정찰 단계부터 비용적 손해를 안고 시작해야 하는 억울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결국 중요한 건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자기만의 타이밍을 만들어내는 감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최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