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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리뷰] ASL 시즌21 8강 3경기 총평 - 기적의 패패승승, 그리고 찰나의 판단이 가른 잔인한 승부

이제동의 히드라 부대를 공격하는 이재호의 테란 병력
이제동의 히드라 부대를 공격하는 이재호의 테란 병력 (출처: 경기 실황 캡쳐)

안녕하세요, ASL 포커스의 김 팀장입니다. 오늘 하루도 잘 보내셨나요?

어제 퇴근 후 씻고 나와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따며 모니터 앞에 앉았습니다. 어제 밤은 정말 놓칠 수 없는 매치업이었죠. 저그전 스페셜리스트 이재호 선수와 폭군 이제동 선수의 8강전. 내심 4강에서 이영호 선수와의 전설적인 리쌍록이 다시 성사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보았습니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한 편의 잔혹 동화 같았습니다. 그 숨 막혔던 풀세트 명승부를 제 직장 생활의 경험과 함께 리뷰해 보겠습니다.

숨 막히는 압박감, 시스템의 승리 (1, 2세트)

초반 흐름은 이재호 선수의 완벽한 무대였습니다. 1세트에서 111 체제로 시작해 레이스를 띄웠을 때, 이재호 선수의 레이스 컨트롤은 그야말로 예술이었습니다. 뮤탈리스크를 무력화시키고 오버로드를 끊어내는 세밀한 조작을 보며, 저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특히 1세트 11시 확장을 타격하는 타이밍은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이제동 선수가 럴커로 방어선을 구축하려던 찰나, 간발의 차이로 병력이 들이닥쳐 쑥대밭을 만들었죠. 마치 저희 팀이 야심 차게 방어 논리를 다 세워놓고 결재를 올리기 직전, 경쟁사가 한발 먼저 핵심 기술 특허를 내버리며 시장을 장악했을 때의 그 뼈아픈 무력감이 모니터 너머로 전해졌습니다.

2세트 제인 도에서도 이재호 선수의 멀티태스킹은 경이로웠습니다. 드랍십으로 후방을 교란하며 주력 부대로 5시를 타격하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아, 테란 정말 사기 아닌가' 하는 투정이 절로 나왔습니다. 압도적인 자본력과 시스템으로 전방위 압박을 가해오는 거대 대기업을 상대하는 벤처기업의 심정이 이럴까 싶더라고요.

폭군의 근성, 벼랑 끝에서 쓴 기적 (3, 4세트)

0-2로 몰린 상황, 보통의 선수라면 멘탈이 나가서 무너졌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동 선수는 달랐습니다. 3세트 초반 마린 찌르기에 피해를 보고 레이스에 오버로드가 찢겨 나갈 때만 해도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초장기전으로 끌고 가며 디파일러와 다크스웜, 럴커로 11시를 기어코 지켜내고 중앙을 장악해 나가는 뒷심을 보며 제 피가 다 끓어올랐습니다.

4세트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8배럭 벙커링이라는 치명적인 기습을 단 두 기의 드론으로 막아낼 때의 전율이란! 이후 불리한 상황을 뮤탈 견제로 극복하고, 상대의 배틀크루저 승부수에 울트라리스크 목동 저그로 화끈하게 밀어버릴 때는 모니터 앞에서 혼자 박수를 쳤습니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큰 프로젝트에서 연달아 실패해 패색이 짙어질 때가 있습니다. 다들 포기하자고 할 때, 기본기 하나만 믿고 밤을 새워가며 판을 뒤집어 2-2 원점으로 되돌렸던 제 과거의 치열했던 팀 프로젝트가 떠올라 뭉클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이제동 선수의 몰아치는 집중력은 정말 결승전 그 이상의 퀄리티였습니다.

찰나의 판단이 가른 잔혹한 5세트

운명의 5세트 옥타곤. 이 경기 하나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초반 흐름은 좋았습니다만, 결말은 너무나도 아쉽고 잔인했습니다.

이재호 선수는 메카닉을 가는 척하며 발키리와 바이오닉을 조합한 일명 발리오닉을 준비했습니다. 이 심리전에 낚인 이제동 선수는 방어력 업그레이드 대신 공격력 업그레이드를 누르는 치명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죠. 12시 3멀티 방어전에서 그 선택의 나비효과가 터졌습니다.

화면을 보며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 왜 거기서 좁은 곳으로 들어가서 싸웠을까! 성큰 지으면서 디파일러 뜰 때까지 조금만 더 참지!" 노방업 상태의 럴커가 마린 부대 앞에서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는 장면은 너무나도 뼈아팠습니다. 진형과 상황이 유리해 보였다고 해도, 확실한 수비 라인 구축 없이 섣불리 교전을 연 찰나의 조급함이 결국 승부를 가르고 말았습니다. 현업에서도 경쟁사의 동향을 오판하여 방어 시스템(방업) 구축 없이 무리하게 공격적인 마케팅(공업)을 전개하다가 한순간에 훅 밀려버리는 뼈아픈 실패 사례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승자에 대한 찬사, 그리고 아쉬운 밤

이제동 선수가 지지를 선언하는 순간, 깊은 한숨이 나왔습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4강에서 이영호 선수와의 전설적인 리쌍록을 너무나도 보고 싶었기에, 완벽한 판짜기로 승리한 이재호 선수가 얄밉게 느껴지며 참 눈치가 없다는 생각마저 아주 잠깐 스쳤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돌아보면, 상대의 허를 찌른 이재호 선수의 준비성과 단단한 멘탈은 우승을 노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슈퍼 테란의 모습이었습니다.

비록 제가 원하던 대진표는 완성되지 않았지만, 30대 후반의 나이에도 전성기 못지않은 열정과 피 말리는 두뇌 싸움으로 엄청난 명승부를 보여준 두 선수에게 진심 어린 기립 박수를 보냅니다. 최근 엑셀과 회의에 치여 피곤했던 머리가 덕분에 맑게 씻겨 나간 기분입니다. 다들 오늘 밤은 푹 주무시고, 내일도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