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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택뱅리쌍은 왜 스타판의 낭만인가 – 치열하게 싸우고, 시대를 호령하고, 우리들의 청춘으로 남은 네 명의 전설

택뱅리쌍 단체 사진
택뱅리쌍 단체 사진 (출처: 유튜브 이제동TV 공식 영상 캡쳐)

스타크래프트 커뮤니티나 관련 유튜브 영상을 돌아다니다 보면 시대를 불문하고 끊임없이 소환되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택뱅리쌍'입니다. e스포츠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스타판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네 명의 게이머를 일컫는 말이죠. 기록과 우승 횟수만으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당시 우리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던 이 네 명의 낭만적인 서사를 제 직장 생활의 기억과 함께 풀어보려 합니다.

한 명의 독재자가 아닌 네 명의 라이벌 – 그래서 낭만이었다

스타크래프트 초중반기에는 임요환, 이윤열, 최연성, 마재윤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본좌(독재자)'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한 명의 절대 강자가 모든 대회를 휩쓸던 시기였죠. 하지만 마재윤의 7일 천하가 무너진 2007년 3.3 혁명 이후, 스타판은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김택용(택), 송병구(뱅), 이제동과 이영호(리쌍). 이 네 명의 천재들이 등장해 스타판을 4분할하여 통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들이 낭만이었던 이유는, 한 명이 다 해 먹는 지루한 구도가 아니라 각기 다른 뚜렷한 개성과 서사를 가진 네 명이 물고 물리며 끊임없이 라이벌 스토리를 써 내려갔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피지컬의 사파 프로토스 김택용과 묵직한 정파 프로토스 송병구의 '택뱅록', 그리고 역대 최강의 저그 이제동과 역대 최강의 테란 이영호가 맞붙는 피 튀기는 '리쌍록'까지. 이들이 결승에서 만나는 날이면 치킨집 전화통이 불이 날 정도였습니다. 조금만 과장하자면 월드컵 결승과 비슷했다고 할까요. 물론 스타팬 한정으로요!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한 명의 독단적인 리더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조직은 금방 고인 물이 되고 활력을 잃기 마련입니다. 반면, 저희 본부에 각기 다른 강점을 가진 네 명의 에이스 팀장들이 서로를 견제하고 또 배우며 치열하게 실적 경쟁을 펼쳤던 해가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그때가 저희 본부의 가장 눈부신 전성기였습니다. 택뱅리쌍은 바로 그런 존재들이었습니다. 누구 하나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엎치락뒤치락하며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의 메타와 한계를 극한까지 끌어올렸죠.

공식 리그의 황혼기와 스타2 전환 – 잔인한 현실의 벽

하지만 모든 찬란한 시대에는 끝이 있듯, 택뱅리쌍에게도 잔인한 현실이 찾아왔습니다. 2012년, 브루드 워 공식 리그가 종료되고 스타크래프트 2(이하 스2) 병행 시즌이 도입된 것입니다. 스타1에서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신의 영역에 있던 이들이었지만, 새로운 플랫폼 앞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저는 이 시기를 보며 가슴이 참 아팠습니다. 제가 처음 팀장을 달았을 때, 오프라인 영업과 전통적인 마케팅에 있어서는 업계 최고라 자부하던 저희 부장님들이 하루아침에 불어닥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디지털 전환)'의 물결 속에서 새로운 툴과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해 무력하게 뒤처지시던 모습이 그대로 겹쳐 보였거든요.

김택용은 스2 전환 후 끝없는 연패의 늪에 빠지며 결국 가장 먼저 은퇴를 선언했고, 송병구 역시 오랜 기간 연패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나마 이영호와 이제동이 엄청난 연습량으로 스2에서도 정상급 기량을 선보이며 자존심을 지켰지만, 스타1에서처럼 최정상에 올라서진 못했습니다. 결국 2016년을 기점으로 네 선수 모두 현역 은퇴를 선언하며 기나긴 프로게이머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죠. 이들이 짐을 싸는 모습을 보며 수많은 2030 팬들은 "우리의 10대, 20대 청춘도 이렇게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구나"라며 깊은 상실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ASL 무대에서의 귀환 – 낭만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은퇴 후 택뱅리쌍은 모두 아프리카TV(현 SOOP)로 넘어와 개인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비록 공식 케스파(KeSPA) 리그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ASL(아프리카TV 스타리그)이라는 새로운 무대가 열리면서, 이들은 다시 마우스를 잡고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시작했거든요.

물론 세월이 흘러 30대에 접어든 이들의 피지컬은 현역 시절의 그 날카로움과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각자의 사정으로 폼이 떨어지기도 하고, 팬들을 실망시킨 뼈아픈 이슈들로 공백기를 가지기도 했죠.

하지만 얼마 전 ASL 16강 무대에서 무려 15년 전의 데자뷔처럼 김택용, 이제동, 이영호가 한 조에서 만나 맞붙는 모습을 보았을 때, 제 가슴은 여전히 중고등학생 시절 피씨방에 앉아있던 그때처럼 미친 듯이 뛰었습니다. 이들의 경기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밤을 새워가며 친구들과 빌드를 토론하고 열광했던 제 청춘의 한 조각을 다시 꺼내어 보는 소중한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팬들이 택뱅리쌍을 스타판의 영원한 낭만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그들이 쌓아 올린 압도적인 승률과 우승 트로피 때문만이 아닙니다. 무대 위에서 보여주었던 맹렬한 승부욕, 스2 전환기 시절 보여주었던 인간적인 좌절과 눈물,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부스에 앉아 우리에게 과거의 향수를 선물해 주는 그 모든 서사 때문입니다. 택뱅리쌍은 단순한 프로게이머 4인방이 아니라, 우리들의 가장 뜨거웠던 시절을 함께 관통한 영원한 전설이자 낭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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